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그 개와 혁명 - 줄거리, 감상과 밑줄

by 하롸랑 2025. 5. 28.

 

어.. 대단하십니다....쩝

 

음.. 이상문학상 대상 최연소 수상?

 

"이상문학상 대상 최연소 수상!" 이 책을 읽기 전 마주한 마케팅은 불편했다. '최연소'라는 수사는 어릴 적에는 나도 뭐든지 하나 해야 하는 거 아냐, 하는 불안을 일으켰고 나이 차고 나서는 나는 대체한 게 뭔가, 하는 자괴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개와 혁명』을 펼치기 전에 시선은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래, 특별히 대단한 것 없는 범인의 흔한 질투가 맞다.

책을 모두 읽고 난 지금 이 책을 강하게 추천하는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이 단편은 올해 읽은 책 중 손에 꼽힐 정도로 훌륭했다. 어쩌면 팬이 될 것 같다. 다 읽고 난 후에는 예소연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흥미가 생긴 것은 물론, 이상문학상이라는 것에 대해 전에 없던 관심이 생길 정도였으니.

줄거리: 장례식에서 이룬 작은 혁명

이야기의 무대는 암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 태수씨의 장례식장으로, 그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을 딸 수민이 회상하며 전개된다. 책 초반부에 대체 화자와 태수 씨는 무슨 관계야? 하고 알아보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 알고 보면 아버지를 사랑한 딸이, 수명을 길게 해 준다는 이름을 악착같이 챙겨 부르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태수 씨는 민주화를 지나는 한국 근현대사 격변의 시대 한가운데, 그저 시대를 충실히 살았을 뿐인데 모순적인 삶의 모양을 갖게 된다. 젊을 적 평등과 진보의 이념을 숭배했으면서도 페미니스트를 혐오하고 제사만큼은 엄격히 챙기는 태수 씨를 딸 수민이를 비롯한 가족들은 깊이 애정한다. 그의 진면모는 딸 수민이가 고민을 들고 가거나 얘기를 들려줄 때 보이는 반응으로 알 수 있다. 아끼는 이들 앞에서 흐물흐물 무너지는 사상은 대단하지는 못하더라도 인간적이고 사랑스럽다. 

 

태수 씨가 죽고 나서 장례식장에 나타난 조문객들에게 수민이가 수첩에 써둔 글씨로, 수민이만의 재해석한 유언을 아빠 흉내를 내며 전달하는 부분에서는 웃음 참기에 성공하기 쉽지가 않다. 사이다스런 통쾌한 장면들도 있다. 여기 다 옮기면 책을 보기 전에 이 글을 먼저 읽는 분들의 재미를 빼앗게 되니 굉장히 재밌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어 아쉽다.

 

마지막에 태수 씨의 유언을 실천하며 반려견 유자가 들어와서 엉망으로 만드는 부분까지 보고 나면 이 가족 한 명 한 명 모두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마치 좋아하는 리얼리티 예능프로의 완벽하지 않지만 인간다운 멤버들을 보며 유쾌하게 웃게 되는 것처럼. 

 

감상: 작게 똘똘말린 삶의 아이러니

이 작품이 마냥 웃기거나 슬픈 것도 아니고, 그 둘이 번갈아 오는 것도 아니며, 그 둘이 거의 동시에 느끼도록 만든다. 어떤 음식을 먹었는데 굉장히 상반되고 강렬한 맛이 한 번에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삶의 아이러니를 똘똘 말아 조그맣게 압축해 놓은 것처럼. 하지만 감정을 짜내기 위한 억지스러운 연출은 없다. 그냥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족이 가운데에 있을 뿐이다. 단편이었음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밀린 책 어서 읽고 예소연 작가님의 다른 책도 빨리 읽어보고 싶다.

 

그 개와 혁명 밑줄 - 공여사, 자중하시오. 우리의 적은 제도잖아.
울어야할지 웃어야 할지 몰라서 둘다 하게 됩니다

 

 

 

"울지 마쇼. 태수 씨의 지령이요."...  300만 원은 꼭 우리 수민이한테 갚아주쇼. 당신 러시아 간다고 했을 때 내가 부쳤던 돈. 나는 최대한 태수 씨의 목소리를 따라 했고 그럴싸한 목소리가 나와 뿌듯했다. p15

나는 그런 태수씨의 질문에 대충 대답하며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오래도록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잘못한 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냥 적당히 돈 없고 적당히 뭘 모른 채 살아왔을 뿐이다. 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