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게 배려하는 침묵
「맡겨진 소녀」는 작년인가 (또) 이동진 평론가의 추천으로 읽기 시작했다. 추천영상을 보자마자 읽은 것이 아니라, 시간이 꽤 자나서 읽어서인지 어떤 이유로 추천을 했는지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다시 읽어보니 이 책의 색깔은 아주 연하고 깊고 부드럽다. 인상을 남길 만한 강렬하고 자극적인 설정과 장치는 없다. 그러나 차근히 읽다보면 이야기가 내밀하게 스며든다. '침묵' 자체가 이 책에 중요한 소재이지만, 동시에 이 책이 쓰인 방식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지 않는 것을 가운데 놓고 있다.
* 방금 추천 영상을 다시 봤는데 평론가님이 일부러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생략해놓으신 부분도 많았던 것을 발견했다. 역시 이 일이 업인 분이셔서 매너가 좋으시다!
줄거리: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다
소설은 어떤 소녀가 면식도 없는 먼 친척집에 맡겨진 부분부터 시작한다. 아이는 많은 형제자매 속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의 애정을 받지 못했다. 이 먼 친척 부부는 진정으로 아이를 온 마음으로 돌보아 준다. 여기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가 두려워하며, 감사해하며 맡겨진 곳에서의 삶을 살아간다.
이들은 각자 상처와 사연을 품고 있지만, 아픔을 함부로 들춰내지도 않고 성급하게 위로하려 들지도 않는다. 대신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혀가며,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더 나아가 보호하기 위해서 애쓴다. 이들의 관계는 극적인 사건이나 갈등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배려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진심을 전한다.
감상: 무심하지 않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온기
담담하고 잔잔한 문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묵직한 감동을 준다. 나이와 상관없이, 처지와 상관없이 서로를 배려할 줄 알고 다른 이의 마음을 알아채고자 애쓰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작가는 그 답을 이 소설을 통해 보여준다.
현실에서 우리는 종종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곤 한다. 듣는 사람의 마음은 생각하지 않고 흥미본위로 질문을 던지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만 늘어놓는 경우 말이다. 그런 무신경함에 지친 우리에게 이 소설의 인물들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침묵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상대의 아픈 과거를 알게 된 순간, 꼭 맞는 말을 찾아낼 수 없다면 섣부르게 위로를 건내기 보다 침묵한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본 순간이라면 알 것이다, 이런 때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한 장면에서도 주인공이 시끄러운 장소에서 '침묵을 듣지 않아도 되어 안도했다'고 말할 정도이니까.
때로는 상대방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때로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마음을 재촉하지 않기 위해 침묵을 선택하는 기다림의 온기. 소통과잉의 시대에 타인과 대화하면서도 타인이 아닌 '타인과 소통하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진정으로 다른 사람이 걸어온 삶고 겪은 일들을 생각한다면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늦더라도 깊이, 진정성 있게 수용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밑줄: 하지 않은 말이 말해주는 것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밑줄로 위의 문장을 골랐다(p.73). 이 책 전체를 설명하는 문장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서로를 배려하는 과정 중에 맡겨진 소녀가 이별을 앞두고 울음을 참기 위해서 모닥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행동과 속으로 삼키는 말 속에 어떤 감정이 녹아있는지를 내 경험에서 상상하면서 모두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려져 있다면 우리는 그려진 것 안에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무엇이 그려져 있지 않은 무한한 여백속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된다. 하지 않은 말과 조용한 침묵으로 각자의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 그것이 클레어 키건이 침묵을 활용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